서적

teamLab은 왜 ‘경계 없는 세상’을 지향할까

Inoko Toshiyuki, Uno Tsunehiro "Jinrui Wo Mae Ni Susumetai : teamLab To Kyokai No Nai Sekai", PLANETS, 2019, p.220-228

Jinrui Wo Mae Ni Susumetai
Inoko Toshiyuki, Uno Tsunehiro
2019.11.21
3080엔 (세금 포함)

teamLab Borderless, 압도적인 규모!

파리 전시가 한창이던 2018년 6월, 상설 전시 ‘teamLab Borderless’(이하 보더리스)가 도쿄 오다이바에 오픈했다. 제작 준비 시기부터 현장을 견학했던 우노는 오픈 후에도 여러 작품들을 체험했다. 파리 전시를 함께 돌아보며 보더리스에 대한 열정적인 감상을 전한다.

우노 파리 전시와 이 오다이바 ‘보더리스'는 거의 같은 시기에 진행했죠. 타이틀이 말해주는 것처럼 오다이바에서도 파리에서와 같은 메세지를 다른 형태로 전달하고 있어요.

‘그래피티 네이처 - 높은 산과 깊은 계곡’ ©teamLab
‘그래피티 네이처 - 높은 산과 깊은 계곡’ ©teamLab
‘Multi Jumping Universe’ ©teamLab

이노코 사실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보더리스'라는 말을 사용하진 않았어요. 세상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계선 없이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죠.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보더리스'는 다섯 개의 컨셉으로 구성된 세계에요.
첫 번째는 ‘Borderless World’. 작품이 전시된 장소에서 벗어나 감상자의 신체와 동시간의 흐름을 갖게 돼요. 그리고 작품끼리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경계 없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세계에요.
두 번째는 ‘teamLab Athletics 운동의 숲'. 이에 관해선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신체적인 지(知)’를 업데이트하는 구조에요.
세 번째는 ‘Future Park’(스케치 아쿠아리움, 슬라이딩 후르츠 필드 등).
네 번째는 ‘램프의 숲'. 2016년 프랑스에서 전시한 작품(‘공명하는 램프의 숲 - 원 스트로크’) 등을 전시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마루와카 히로토시의 ‘EN TEA’와 콜라보 한 티 하우스, ‘EN TEA HOUSE’. 이곳에선 찻잔에 차를 넣으면 그 속에서 무한히 탄생해 피어나는 작품(‘찻잔 속 무한한 우주에 피어나는 꽃들’)을 체험할 수 있죠.

‘뒤집어진 세계, 자이언트 커넥팅 블록 타운’ ©teamLab
파리의 ‘Flowers Bombing’ 앞에서 실루엣으로 포즈를 취하는 우노.

우노 일단 놀라웠던 것이 압도적인 규모인데.

이노코 ‘보더리스’는 벽부터 천장, 바닥까지, 수많은 작품들로 빼곡히 채웠어요. 면적이 1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뮤지엄 시설이에요.

우노 이 정도 규모에 도전한 건 꽤나 본질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규모 상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체험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기존의 미술 전시는 보통 길어도 몇 시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의 teamLab 전시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이번 전시의 경우, 모든 작품을 찬찬히 보려면 최소 반나절은 걸려요. 오히려 테마파크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죠. 꼼꼼하게 감상하면 하루 종일 있어도 모든 작품을 보기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예요.

이노코 오히려 모든 작품을 보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애초에 작품이 계속해서 이동하니까 전체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죠. 예를 들어 ‘까마귀'나 시리즈 작품인 ‘Crows are Chased and the Chasing Crows are Destined to be Chased as well, Transcending Space - Floating Nest’의 경우, 까마귀 떼가 공간 밖으로 나와 다른 작품 공간으로 날아가요. 그런 식으로 작품의 물리적인 경계선도 없을뿐더러 작품 자체가 이동한 공간, 미디어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게 한 전시에요.

우노 한 작품이 다른 작품에 침투함으로써 작품 간의 경계선이 소실되는 건 2017년 런던 전시부터 시작된 컨셉인데(Chapter9 참고), 이번엔 그것의 진화형으로 하나의 작품이 이동하면서 형태를 바꿔나가요. 근데 그건 당연한 진화이기도 하죠. 그런 방식이어야만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경계선이 사라지면서 자유로워져도 이로 인해 자신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은 것처럼 말이에요.

‘teamLab Borderless’ 입구와 오다이바 관람차 출구가 나란히 있어 다양한 사람들이 오간다.
‘찻잔 속 무한한 우주에 피어나는 꽃들’과 ‘Tea Tree’ ©teamLab
‘공명하는 램프의 숲’에서 이 책의 스틸컷을 촬영하던 중, 이노코는 우노에게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오리지널 요리 ‘이노코 전골’에 대해 얘기했다. (Photographer: Jun Imajo)
‘Crows are Chased and the Chasing Crows are Destined to be Chased as well, Floating Nest’ ©teamLab

이노코 지금까진 작품이란 작가의 이념을 응축시켜 물질화한 것이었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아트가 물질에서 분리되어 해방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작가의 이념을 물질이 아닌 ‘유저의 체험 그 자체'에 직접 응축시킨다는 생각으로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에는 물질들을 그저 늘어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 더 쾌적한 공간과 시간과 같은 이상적인 환경이 있는 것 같고요.
예를 들어 사람의 움직임이 더 자연스러우니까, 그런 사람들의 체험에 직접적으로 응축되는 작품이라면 작품 자체도 사람들과 같은 움직임을 갖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의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작품의 시간은 멈춰있거나, 영상의 경우는 컷이 들어가요. 이러한 것들이 시공간의 경계를 만들어내는거죠. 이 시공간의 경계를 없애나가고 싶어요.

우노 바꿔 말하면 종래의 미술관 아트와는 시공간의 컨트롤이었다는 거네요. 즉 인간이 한 곳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물리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장소인 것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품에 반사된 빛을 눈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일 뿐이었어요. 여기에 teamLab은 시간의 컨트롤을 더하려고 하는 거죠.
이때 포인트는 20세기 영상문화, 예를 들어 영화극과 같이 작품의 시간에 사람을 억지로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teamLab의 전시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몰입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우리에게 작품이 다가오잖아요. 이는 회화 작품이 인터랙티브하지 않다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해요. 이노코씨는 예전에 ‘모나리자'를 인용한 명언도 남겼었죠? (Chapter1 참고)

이노코 “‘모나리자' 앞이 사람들로 붐비는 게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회화 작품이 인터랙티브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거 말인가요?

우노 네. 다른 감상자의 존재가 작품을 변화시킨다면 ‘모나리자' 앞이 적당히 붐비는 게 좋아질 거라는 발상인 거잖아요.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아트와 테크놀로지가 개입한다는 건데, 이는 타인의 존재가 오히려 세계를 다채롭게 만드는 상태를 만들어요.
이에 작품들은 사람과 시간과의 관계에 개입해요. ‘이거 아까 봤나?’하면서 계속 돌아다니게 되는 순간, 우리가 평소의 공간 감각을 상실하고 나아가 시간 감각 또한 마비되게 되는데, 이러한 ‘헤매임'이야말로 작품 체험으로 성립하게 되는 거죠.

이노코 맞아요. 작품과 자신의 육체적인 시간이 자연스럽게 동조되어 경계가 허물어졌으면 좋겠어요. 단, 자신의 육체적인 시간과의 경계를 느끼기 어려운 시간 축의 세계를 만드는 거니까 이들이 어느 순간 현실 세계 그 자체가 되어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긴 해요.

우노 몇 년 전인가 이노코씨가 ‘21세기에 물리적인 경계가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부터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현대라는 게 물질이 절단면이나 분할점이 되기 힘든 시대니까요. 예를 들어 공업 사회에는 자동차나 워크맨 갖고 있냐 아니냐에 따라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달라졌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Google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가'와 같이 소프트웨어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고 있죠.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컨트롤하는 궁극적인 대상은 인간의 시간감각인 것 같아요. 빈 시간을 활용하는 법이라든지, 쇼핑 갈 시간을 Amazon으로 생략시킨다든지. 인터넷이 등장한 순간 공간의 중요성이 확 줄어들었으니까요. 그런 것처럼 지금은 물질이라는 공간적인 것보다 시간이 세계를 분할시키고 있는거죠.
예를 들어 흔히 말하는 도그 이어. 도쿄나 런던처럼 도심부 정보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러스트벨트의 자동차 정비공과는 전혀 다른 시간감각을 갖고 살고 있을 거예요. 때문에 시간 감각에의 개입 없이는 경계선은 사라지지 않아요. 이게 상당히 본질적인 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노코 그렇군요.

우노 시간은 복사할 수 없어요. ‘모나리자'라는 작품을 몇 번씩이나 본 사람도 있을 텐데, 극단적으로 말해 만약 기억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한 번만 봐도 충분한 거잖아요? 하지만 teamLab의 이번 전시는 시간감각에 의해 작품이 변화하니까 하나하나의 체험이 고유한 것이 돼요.
이론상, 우리는 이미 사람의 망막이 인식하는 것보다 높은 해상도의 영상을 만들 수가 있어요. 이러한 흐름은 복제 기술이 생겨난 시점부터 시작된 것인데, 이렇게 되면 아름다운 사진과 영상 같은, 정보로 환원 가능한 것들은 점점 더 희소가치가 성장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이런 말 하면 혼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이미 ‘모나리자'의 실물과 거의 같은 것을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어요. 이러면 물질이 가진 일종의 아우라 같은 것은 거의 의미를 잃게 된다고 볼 수 있죠. 때문에 teamLab이 시간감각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신체적 / 3차원적인 ‘지(知)’의 체험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세상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 ‘Universe of Water Particles on a Rock where People Gather’에 빠져든다. (Photographer: Jun Imajo)

우노 파리 전시에서 ‘익스히비션'과 ‘아틀리에’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해진 것처럼, 오다이바 ‘보더리스'도 작품 간의 경계선뿐만 아니라 성인을 타깃으로 한 전시가 어린이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애슬래틱한 전시로 연결되죠.

이노코 이곳(teamLab Athletics 운동의 숲)은 ‘신체로 세상을 이해하고 입체적으로 인식하다'라는 컨셉을 기반으로 한 플로어에요. ‘신체적 지(知)’에 대한 생각(Chapter6 참고)을 진척시켰다고도 볼 수 있어요.
최근에는 그중에서도 ‘공간 인지력'에 관심이 있어요. 실제로 공간 인지력은 이노베이션, 크리에이티브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숲이나 산과 같은 자연은 굉장히 복잡하고 입체적인 공간인 거죠.

우노 세상은 인간의 인지로 이루어진 것 이외의 모든 것이 입체적일 테니까요.

이노코 맞아요. 도시는 공간이 너무 평면적이고, 종이도 티비도 스마트폰도 전부 평면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머리만을 이용해 세상을 평면적으로 인식하다 보니 평면적인 사고 또한 만연하게 된 거죠.
그래서 이 ‘운동의 숲'에서만큼은 감상자가 복잡하고 입체적인 공간 속에 강제적으로 들어가게 해서 공간 인지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게 프로젝트인 거예요.
플로어는 온몸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는 다양한 입체적 작품들로 구성돼있어요. 예를 들어 teamLab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동시에 여러 명이 참여할 수 있는 트램펄린을 이용한 이 작품(Multi Jumping Universe)에서는 옆에서 뛰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내려가거나 올라가거나 하죠.

우노 ‘운동의 숲' 세계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넓이의 ‘그래피티 네이처’(그래피티 네이처 - 높은 산과 깊은 계곡)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진짜로 산을 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죠. 제대로 걸을 수가 없는 게 꼭 던젼 같기도 하고 무섭더라고요(웃음).

이노코 이런 ‘신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체험을 통해 뇌의 해마를 성장시켜 공간 인지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창조적 운동공간'을 만들려고 해요. 이런 세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힘이라는 게, 말 그대로 종래의 지(知)랑은 차원이 다른 거거든요. 어쨌든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식으로 다른 차원으로 생각하는 ‘고차원적 사고'인 건데, 알기 어려우니까 ‘입체적’으로 했어요.

‘2차원' vs ‘3차원'의 사고를 뛰어넘어

우노 애초에 teamLab은 처음에 ‘초주관 공간 이론'을 기반으로 모니터 속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고, 그것들을 3차원으로 옮기는 것을 최근 수년간 활동의 밑바탕으로 삼았다고 생각해요. 여기엔 우리가 허구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3차원 현실에서 느낄 수 있다는 놀라움도 있었을 거고요. 이 부분과 teamLab이 만드는 아트 세계만으로 ‘경계 없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건 비유 관계로써도 꼭 들어맞죠.
예를 들어 이노코씨는 ‘평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국가라든지 평화라는 건 실제로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진짜로 존재할 거라고 믿으며 살고 있어요. 이처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들 머릿속엔 있는 것은 굉장히 3차원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인간의 상상력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어요. 이노코씨는 이런 것들을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려 2차원을 3차원으로 끌어내고 있죠. 그리고 이 자체가, 컴퓨터의 힘으로 마치 자연과 같이 경계 없는 세상에 다가서게 된 사회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노코 예를 들어 강한 개체로써 인지되고 있는 것도,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과의 연속선 중 일부이며 섬세하고 작은 것들의 연속된 집합 속에서 우연히 살고 있는 것뿐인데, 이 자체로도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들이 확실히 볼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나 보편적이라고 믿는 모든 것들은, 사실 세상과의 연속선 상에선 아주 약하고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노 ‘소설 트립퍼'에서 연재(‘범 이미지론')에서, teamLab은 ‘사람 사이의 경계선’, ‘물질들 간의 혹은 작품들 간의 경계선', ‘인간과 세상과의 경계선'이라는 세 가지 경계선을 전부 분해하려고 한다고 했었죠. 단, 지금 얘기하는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는 이것들과는 별개로, 제4경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궁극적으로는 생사의 경계선인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좀 더 고찰해보고 싶네요.

이노코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역시 고정관념을 파괴할 필요가 있어요. 파괴와 창조는 세트이기도 하구요. …어쨌든(웃음). ‘보더리스'도, 이 세계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일 년에 20번도 30번도 재방문하는, 몇 번이고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해요.

‘teamLab Borderless’ 설치공사 모습 ©teamLab
‘teamLab Borderless’ 설치공사 모습 ©teamLab
‘teamLab Borderless’ 설치공사 모습. 이노코는 왠지 헬멧이 어울린다.